오늘의 역사는? 7월22일(2011노르웨이테러사건)
반갑습니다 마왕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2011 노르웨이 테러사건입니다!
1.사건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가 열렸던 부스케르 주의 우퇴위아(Utøya) 섬
7월22일 오후 3시 30분 노르웨이의 여느 평화의 섬, 우퇴위아 섬에서는 노동당 주최의 청소년 정치 캠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얀 봉고차 한데가 들어 옵니다. 운전자는 정부 청사에 차 한대를 주차해놓고 신속하게 빠져나갑니다. 잠시후...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정부 청사 입구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노르웨이 정부청사.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아주 유유히 자신의 발걸음을 다음 코스로 옮기는 자가 있었으니 이 자의 이름은...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Anders Behring Brei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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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자였던 그는 미래의 마르크스주의자, 진보주의자를 모두 죽이고 유럽을 구하겠다고 정신나간 소리를 합니다. 이 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2.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1979년 2월 13일 오슬로 출생이었던 그는 1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 양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없이 자랐던 그는 고교 졸업 후 아메리칸 인터콘티넨털대에서 중소기업운영학과를 수강했다고 하네요. 이후 2009년부터 오슬로 교외에 농산물 재배업체 지오팜을 설립, 운영했는데, 이는 노르웨이 테러에 이용할 비료폭탄 제조에 쓸 비료를 합법적으로 구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추후 밝혀졌습니다. 그는 극우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피난민들을 혐오했던 그였기에 진보당의 난민 정책에 굉장히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에 당시 총리를 사살하고 미래의 노동당 인재들을 모두 죽이고자 계획합니다.
3. 계획된 범죄
그는 체코에서 총기를 구입하려 시도하다가 실패를 하였고 결국 노르웨이 안에서 사냥허가증을 취득하고 Mini-14 소총의 소지 허가를 얻고 이 관련 모델을 1400유로로 구매합니다. 이후 오슬로 권총 클럽에서 2걔월간 15회의 교육을 받고 권총 소지 허가를 받은 후 글록 34권총을 구매하게 되었죠.
그리고 자신이 이미 운영했던 농산물 제배업체 운영의 명분으로 비료를 약 6톤 가까이 구매합니다. 이는 폭탄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범행 직전, "2083 - A Europ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2083 - 유럽 독립 선언)이라는 장문의 글을 남겼고 트위터에 존스튜어트 밀의 대사를 하나 남깁니다.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을 좇는 100,000명의 힘에 맞먹는다(One person with a belief is equal to the force of 100 000 who have only interests.)
4. 우퇴이아섬 난사

우퇴이아섬
그는 정부청사에 폭탄을 터뜨린 후 유유히 우퇴위아섬 배 항구로 이동합니다. 이 곳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수단은 배 뿐이며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슬로는 놀랍게도, 많은 이 들을 한 번에 죽이기 위해서 경찰복으로 입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때 당시 청소년 정치캠프에 참석한 10~20대는 모두 700명. 700명의 학생들은 정부 청사 테러 이후 배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모여 있었습니다
오슬로는 경찰복을 입은 상태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까이 오라
오슬로
그리고 이 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이 총격을 피해 건물 안에 숨어있는 학생들에게 ''보트가 도착했으니 어서 오라'라 유인하고 총격을 가합니다.
오슬로가 사용한 총은 산탄총으로서 원래는 체코에서 AK-47을 구입하려하다가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산탄총안에 사용되었던 총알에 니코틴을 넣었다고 하는데요. 니코틴의 경우 피를 통해 몸에 들어갈 시 치사율이 배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지요.. 이후 그는 경찰과 대치를 하다가 항복 선언을 하고 체포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사망한 사람만 77명(정부 청사 폭탄테러 8명, 난사로 69명) 그 중 대부분이 10~20대의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는,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재판이 이뤄졌습니다.

7월22일 노르웨이 참사로 인해서 숨진 아이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이 세워져있다. (출처:경향신문)

오슬로 참사에서 목숨을 잃었던 아이들의 이름을 기록한 추모 조형물. (출처: 경향신문)
5. 이후
그는 결국 체포, 수감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경우 사법이 엄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재판부는 그에게 최고 형량인 징역 21년형을 주었다고 합니다. 2012년 8월24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이후 노르웨이 당국을 인권 침해로 고소를 합니다. 그런데 그 고소 이유가 충격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빵에 바를 버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의 온도가 너무 차갑다',
'보습제를 제공하지 않는다',
'수감실에 장식이 되어 있지 않으며 풍경이 아름답지 않다'
'독방 수감과 타인과의 접촉 금지를 폐지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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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슬로 법원이 브레이비크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커피가 어쩌느니 빵에 바를 버터가 부족하냐느니 하는 억지스러운 부분은 빼고 독방 수감과 타인과의 접촉 금지에 관한 부분을 인권침해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소송 당일날에 카메라, 배심원단을 향해 나치식 경례를 행합니다. 이에 당연히 대다수의 유족들이 분노하였었죠..

2022년 1월 가석방 신청 공판에서 나치스트 경례를 하는 브레이비크.
그리고 그는 2022년 1월, 복역한지 10년째에 가석방 신청을 합니다. 이 때도 역시 나치식 경례를 행합니다. 자신은 이 재판에서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요.... 극우주의자인 자신이 리더가 없는 가운데 제 3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후에도 세상에 나가게 되면 백인 우월주의를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슬로시 722센터
6. 내 생각
역시 사람은 고쳐쓰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로 우순경 사건이 있죠... 2016년 파리에서 있었던 테러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 앞서 글에서도 밝혔지만 사형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근본인 사람들에 대해서 교화를 위해 선량한 사람들이 언제까지 기약도 없이 당하고만 산다는 것이 또 하나의 반인륜적인 제도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식, 그리고 유럽식 법제를 반반씩 가져가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여전히 범죄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도 형성되었고, 조금씩 현실에 맞게 사법제도 역시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제2의 조두순과 같이... 자신의 범죄를 저지르고 10년도 안되서 사회 밖으로 나오는 일... 이 없기르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